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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사가시집

3. <또 별서(別墅)의 시운에 차하다>(서거정)
본문

빨간 무궁화가 사립 곁에 환히 피었으리 그대 집의 삼경이 아직도 어렴풋하구려. 하지장은 만년에 능히 술을 즐겨 마셨고 두보는 퇴청하면 옷을 전당도 잡혔었지. 술잔 들면 호수 빛이 아득히 넘실댈 거고 주렴 걷으면 푸른 산 빛 또한 자욱하리라. 전원에 돌아간 흥취를 알 사람 없고말고 갈매기와 서로 친해 둘 다 기심이 없음을.

4. <담수가 화답하므로, 다시 앞의 운을 사용하여 화답하고, 겸하여 채자휴(蔡子休)에게 적어 보내다>(서거정)
본문

평생에 나는 거취를 단호히 결단 못 하여 공명으로 시비를 야기시킨 게 부끄럽네. 장한의 순채 농어회는 오래도록 좋았겠지. 도잠의 송죽 전원엘랑 어느 때나 돌아갈꼬. 전원엔 약속 있는 청산이 가깝거니와 강호엔 무심한 갈매기가 훨훨 나는데. 기억난다 어젯밤 꿈에 강남을 갔더니 무궁화 울타리에 사립짝이 닫혔데 그려.

5. <사계화(四季花)>(서거정)

매화, 행화, 장미, 작약, 모란, 이화, 해당, 산다화, 자미, 도미, 동백, 규화, 국화 다음으로 <사계화(四季花)>를 노래하고 있다.

본문

천박하고 화려한 꽃 별안간 피고지고 하여라. 네가 사계절을 차지하여 피는 게 가련하구나. 모란꽃은 봄 한 철의 약속만 있을 뿐이요. 무궁화는 단 하루만 화려할 뿐이로다. 절서는 유유한데 꽃이 그 몇 번이나 피던고 풍류는 끊임없어 백번 천번을 완상하나니. 문장 반마의 향기를 훈자하는 솜씨로써 서로 마주해 시 읊어 탈태를 하고 싶어라.

6. <홍근화(紅槿花)>(서거정)
본문

홍근화가 피니, 가을을 더욱 재촉하네.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고, 다시 아침에 피네. 계속 피고 지지 않으니 얼마나 어여쁜가? 가고 오지 않는 정든 님보다 낫구나!

7. <세 번째 화답하다(셋째수)>(서거정)
본문

누구를 위해 그리도 헐뜯고 으르렁대는고. 여럿이 내 순화 같은 아름다움 질시하네. 흰 구슬엔 파리가 작은 티를 이루거니와 흐린 경수 맑은 위수는 한 물이 아니라네. 인간에 어찌 지녕이란 풀이 없었으랴만 세상에는 망우라는 꽃도 또한 있데그려. 천금처럼 진중하여 스스로 아껴야 하네 잠시의 훼예에 어찌 좌절할 수 있겠는가.

1. <석양에 못가를 거닐다>(서거정)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은 본관 달성(達城), 자 강중(剛中), 호 사가정(四佳亭), 시호 문충(文忠)이다. 1444년(세종 26) 식년문과에 급제, 사제감직장(司宰監直長)을 지냈다. 1451년 사가독서(賜暇讀書) 후 집현전박사 등을 거쳐 1456년 문과 중시에 급제, 1457년 문신정시(文臣庭試)에 장원, 공조참의 등을 역임했다. 45년간 여섯 왕을 섬겼다. 문장과 글씨에 능하여 ≪경국대전≫, ≪동국통감≫, ≪동국여지승람≫ 등의 편찬에 참여했으며, 또 왕명을 받고 ≪향약집성방≫을 번역했다. 성리학을 비롯, 천문·지리·의약 등에 정통했다. 문집에 ≪사가집(四佳集)≫ 저서에 ≪동인시화≫, ≪동문선≫, ≪역대연표≫, ≪태평한화골계전≫, ≪필원잡기≫ 가 있다. 서거정은 무궁화에 관련된 시 여러 편을 창작했다. 이를 살펴보자.

본문

작은 못물이 졸졸졸 방죽을 울려 흘러라. 가랑비 속에 지팡이 짚고 홀로 섰는 때로다. 울타리 밑의 무궁화는 피었다 다 졌는데 청산은 석양을 머금고 새는 더디 나는구나.

2. <일휴(日休)가 부쳐 온 시에 차운하다>(서거정)
본문

무궁화 붉게 피고 버들가지 문에 비치고 매실 익을 무렵이라 비는 어둑히 내리니. 서늘하긴 엷은 오사모가 가장 좋거니와 취하는 덴 막걸리 텁텁함을 논할 것 없지. 경술을 익힌 소신은 좋은 계책도 없이 문명 성대에 깊은 은혜만 입고 있다가. 십 년 동안 청산에 갈 약속을 저버렸더니 낚싯배 낚싯대가 꿈속에 자주 들어오네.